최호열의 <포천시 지명유래 11> 명성산

 

명성산은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과 강원도 철원군에 위치한 높이 923m의 한국 명산입니다.

명성산은 궁예 왕과 관련된 유래를 많이 지니고 있는 산입니다. 궁예 왕은 천년 전 후고구려를 건국해 철원으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태봉국' 으로 정해 문란한 정치를 일삼아 왔습니다.

신라의 왕자로 태어난 궁예 왕은 태어 날 때부터 상서롭지 못하다고 여기는 왕이 죽이려고 하자, 유모가 구출하는 과정에서 한쪽 눈이 멀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장해가면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궁예는 승려가 되었다가 후고구려를 세워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스스로 왕이 되는데 궁예는 철원을 중심으로 큰 세력을 이루었지만 '관심법' 등으로 후에 민심을 잃고 부하인 왕건에 의해 내몰려져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합니다.

신하들과 백성들의 신망을 잃게 된 궁예는 918년에 축출돼 왕위를 빼앗기고 왕건의 정변으로 혁명군을 피해 남은 병사들을 이끌고 도망쳐 경기도 포천시에 있는 명성산 정상에 은거하여 병사들과 함께 지내며 근처의 동굴에서 정신수양을 하다가 명성산에서 피살되었다는 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궁예가 왕건과 격전을 벌이다 크게 패해 온 산이 떠나가도록 울었다고 해서 '울음산' 또는 '명성산'이라고 불려졌다고 하며 궁예 왕의 망국의 한이 곳곳에 서려있는 유서 깊은 명산이기도 합니다.

산정호수 좌우에는 궁예가 은둔하며 망을 보았던 곳으로 '망우봉', '망봉산'도 있다고 합니다.

궁예 왕이 부하 왕건한테 쫓기는 과정을 좀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당시 궁예 왕의 첫 도읍지가 철원이었는데 왕건에게 쫓겨나서 포천시 관인면 ‘고남산’이라는 곳으로 도망을 갔다고 합니다.

부하 왕건이 그 곳에까지 쳐들어오자 울음산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도망가던 중 배가 고파서 그 산에서 국수를 먹고 갔는데 그 때문에 그 산봉우리는 ‘국수봉’이라는 이름이 붙였다고 합니다.

궁예 왕은 그 곳에서 국수를 먹은 후 도주를 계속했습니다. 도주 중 산정호수 뒷산에 ‘울음산’이라고 있는데 궁예는 그 곳에 가서 성터를 쌓았고, 그곳에 얼마동안 머물렀습니다. 그 성터는 지금도 그 곳에 남아있습니다.

이 산 이름이 왜 ‘울음산’인가 하면 왕건한테 쫓겨다니는 자신의 신세가 하도 처량해서 궁예가 거기서 통곡을 하고 울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 곳에서 울면서 지내다가 며칠 못가서 또 왕건한테 추격을 받게되니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궁예를 잡으면 큰 상을 내린다는 왕건의 말에 주민들이 돌을 던졌는데 그 동네 사람들이 워낙 장사이다 보니 멀리까지 돌을 던지는 사람이 많아 그들의 돌에 궁예 왕이 맞게되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얼마나 돌을 많이 던졌는지 그 시체 위에 돌이 터미로 모여 쌓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동네 이름이 ‘돌터미’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포천시 관인면 냉정2리 이예손 선생님의 글(1997.4.9)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끝으로 명성산은 포천시의 관광 심벌과도 같은 산정호수와 어우러져 운치가 뛰어난 국민관광지로 이름 난 곳입니다.

포천시에서 매년 10월이면 '억새꽃 축제'를 성대하게 개최하고 있는 명성산은 전체가 암릉과 암벽으로 이루어져 산세가 당당하고 남쪽으로는 가파르나 동쪽으로는 경사가 완만한 한국의 명산중의 명산입니다.

최호열/ 포천신문 회장, 전 민주당 포천.가평지역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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