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역지사지

 

막 세상에 나온 아이는 자신과 세상을 분리해 생각하지 못한다. 아기는 얼마간 자신이 배가 고프면 세상과 타인도 배가 고프다고 여기고 자신이 즐거우면 타인도 즐겁다고 생각한다. 탯줄을 통해 자신이 먹고 싶으면 어머니가 먹고 어머니가 움직이면 자신도 움직임을 느꼈기 떄문이다. 아이는 점점 자라며 기본적 인지 능력을 키워가고 사회적 도덕성을 키워나간다. 그 과정에서 타자에 대한 공감을 키워 간다. '역지사지'를 배워가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점차 공동체는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며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사는 곳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함께 살기 위한 행동 양식을 학습해 간다. 

 

 최근 몇년 사이 토론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종편의 탄생과 함께 '끝장토론 ', '괘도난마' 등 여러 시사 토론 프로그램이 편성 시간표를 매웠다. 하지만 프로그램속 토론모습을 보면 이 사회의 소통문화가 발전하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역지사지' 정신은 도통 보이지 않고 '나만옳지'정신이 만연하다. 사회가 역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서로 가지고 나오는 통계자료는 거의 일치하는 경우가 없고 상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기보단 들으며 반박 포인트부터 찾는다. 문제에 대한 '대전제'의 이해 부터 달라서 애초에 서로 의견을 좁혀갈 여지가 없음에도 그것에 대한 이해의 노력조차 않는다. 이를 테면 헌법을 절대적인 가치로 보느냐, 수정가능하고 진화하는 체계로 보느냐 에 따라 법관련 논의가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가 왜 그렇게 전제를 삼았는지 들어볼 생각도 여유도 없다. 단지 상대보다 말을 많이 하고 말로 눌러야 하는 압박이 있는 듯 보인다. 

 

 '역지사지' 인류의 위대한 성자는 이것을 늘 강조해왔다. 공자는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 했고 예수는 타인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다. 인류애의 기본적인 실천이 '역지사지'라는 내용을 포괄하는 것이라는 뜻일 게다. 이런 관점에서의 역지사지는 단순히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수준이 아니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내가 그 입장이 되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실제 그 상황을 오감으로 인지하듯 입장을 바꿔 머리로 경험해보는 것이다. 이것의 가부여부가 성인과 아기의 차이를 가른다. 자신이 생각하는데로 남이 생각한다고 느끼는 사람과 자신을 생각하듯 남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사랑을 노력하는 것. 어떤 모습이 더 인간다운 모습일까. 

 

[ 포천닷컴 김권 기자 ]